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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에 수록된 민손(閔損)의 효(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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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병열 댓글 1건 조회 99회 작성일 19-09-0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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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에 수록된 민손(閔損)의 효() 이야기

 
 조선조 4대 임금인 세종은 1428(세종 10)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사람이 버지를 죽이는 패륜 범죄를 저질렀다는 보고를 받고 계집이 남편을 죽이고 종이 주인을 죽이는 것은 혹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제 아비를 죽이는 자가 나타났으니 이것은 내가 덕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탄식하며 여러 신하들을 불러 모아 이 사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논의한 결과, 시간이 걸리더라도 풍속을 돈독히 하며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에 4년여의 작업 기간을 거쳐 세종 14(1432)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삼강(군위신강, 부위부강, 부위자강)의 모범이 되는 행실을 행한 자, 즉 효, 충신, 열녀 각 110명씩 총 330명의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담아 발간한 것이 바로 조선 최초의 도덕책인 강행실도이다.

* 삼강(三綱)이란, 유교 윤리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기본강령을 말한다.

   ​임금과 신하(君爲臣綱), 어버이와 자식 (父爲子綱), 남편과 아내(夫爲婦綱)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이 책에는 조선 뿐 아니라 고려와 삼국시대의 사례까지 모아 집현전에서 편찬하하여 딱딱한 유교 경전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엮었기 때문에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

 

 따라서 삼강행실도에 담긴 민손(閔損)의 효()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춘추시대 말엽에 노나라에서 공자가 아끼는 제자 중에 민손(閔損)이 있었다.

민손은 자가 자건(子騫)으로 공자보다 15세가 적었다. 비록 귀족 출신이 아니었어도 환경이 빈궁하여도 머리도 총명하고, 어진 성품이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민손은 어린 나이에 생모가 일찍 죽고 아버지가 재혼하여 계모가 들어와서 함살았다. 아버지와 계모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계모는 자신이 낳지 않은 본처 소생의 민손을 미워하며 심하게 학대하였다. 계모는 한겨울에도 홑바지를 입히고 친자식에게는 목화솜 바지를 입혔다. 다만 민손의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자식들차별하지 않은 듯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으므로 아버지는 민손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몰랐다.

 

 어느 날, 민손이 아버지와 마차를 타고 이웃 마을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엄동설한이라서 날이 너무 추워 말의 고삐를 잡은 민손이 고삐를 자주 놓쳤다. 이를 아버지가 뭔가를 느꼈는지 민손의 옷을 만져보니 목화솜 대신 갈대 잎을 넣은 홑바지였다.

비로소 민손의 아버지는 눈치를 채게 되었다. 배가 다른 소생의 자식이라고 손이 계모로부터 차별을 받고 살아온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가던 길을 돌려 집으로 가더니 계모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행동에 당황한 민손은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만류하였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면 나만 고생하면 됩니다. 만약 어머니가 나가신다면 아버지와 두 동생까지 다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새어머니를 들여오신다면 전처 자식들인 저와 두 동생을 또 미워할게 뻔합니다. 부디 화를 거두시고 두 동생을 위해서라도 함께 살게 해 주십시오. 지금은 저 혼자 춥지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면 세 명의 아들이 춥게 됩니다

 

 마침 부엌에서 부자간의 대화를 엿들은 계모는, 자신그토록 미워하던 전처 생의 아들이 간곡하게 만류하는 말에 큰 부끄러움을 끼게 된다. 그동안의 못을 뉘우치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 구나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뉘우치는 어머니의 모습에 결국 아버지는 화를 풀고 어머니를 용서했다. "민손의 말이 지극히 옳구려! 당신을 내쫓아야 마땅하겠지만 어린 민손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 말이 옳은 것 같소. 앞으로 두 동생처럼 민손에게도 똑같이 사랑하고 돌봐 주시구려!" 계모는 그 뒤로부터 민손을 자기낳은 자식보다 더 사랑하고 아꼈다.

 

 이 일이 있은 후 온 가족은 진실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화목한 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상대방이 나를 나쁘게 대할 때 오히려 나는 선량한 마, 진실 되게 상대방을 대하다 보면 상대방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훨씬 더 좋은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나또한 역사서를 보다가 민손의 이야기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야기는 말할 것없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흥민씨이었다는 점과 삼강행실도편찬하게 했세종 임금 또한, 여흥인 원경왕후 아들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선조이었던 민손이 삼강행실도의 주인공이라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 어떨까요? 그리고 우리들도 선조의 행실을 본받아 일가친척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배려하는 마음과 효를 가슴에 담고 살아갑시다.

 

2019년 한가위를 즈음하여.

대종회 부회장 민병열 근서.




댓글목록

무등골여흥민문님의 댓글

무등골여흥민문 작성일

대종회 부회장 민병열님 선조님의 덕행글을 올려주신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후에손게 도움과 교훈이 될 많은 자료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랑스런 민문에  후손의 하나인 저는 민문의 후손이 되여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저역시 먼 후 날에 나의 자손이라도 기역할수있는 선대로 기역하도록 최선을 하고 자합니다,
아울러 저의 가훈은 충자 효자로 정하여 지역의 서애작가 김 민 선생님의 친필을받아 표구로 가족이 항상 볼수있는 곳에 두고 자식이 어린 아이때부터 가훈의 뜻을 일러주며 사십여년을 지내왔으며 앞으로도 후손이 가문에 누가 되지않고 가문과 사회에 도움이되는 후손이 되도록 지도와 노력을 하겠습니다,
또 한 저의 생활 목포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지본을 기본으로 삼아 가문과 사회에 다소나마 도움이되고자 노력하고있습니다,

위의 삼강 행실도 글을 보신 일가님 모두가 후 손에게 자랑스런 선대로 기역되는 가문과 사회에 모범이 되여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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